‘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양주소놀이굿 한애옥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양주소놀이굿 한애옥

관리자 0 53 09.18 14:43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양주소놀이굿 한애옥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리 나루터마을 8-34번지 

010-3700-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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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파주는 옛부터 큰 만신이 많기로 유명했다. 6·25

한국전쟁 이전에는 개성과 장단군이 한국의 영토

였다고 한다.

파주 장단군에는 덕물산과 굿을 하는 신(神)인

새신(賽神)의 사당(祠堂)이 모셔져 있어서 이곳을

만신의 조정과 성지로 신성시 여기게 되었다. 그

래서인지, 이곳 파주에는 옛날부터 나라에 이름

난 큰 만신들이 많이 났다고 한다.

오늘“이달의 명사를 찾아서”에서 소개해 드릴

한애옥 선생님도 경기도 장단군 고랑포에서 덕물

산의 정기를 받고 청주한씨 가중에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황해도 평산의 신

장군님과 덕물산 최일 장군님이 주장으로 강림하

셨다고 한다.

한애옥 선생님은 신병으로 인해서 어려서부터

몸이 많이 아팠다고 한다. 애기때부터 신이 와서

죽어자빠지듯 까무라치기를 반복하여 초등학교

입학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덟살 때부터 무병(巫病)으로 양발이 썩어들

어가기 시작하여 제대로 걷지 못하다 12세가 되

던해 10월 초닷새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서 손뼉

을 치며 신이 와서 말문이 열렸다고 한다.

그 길로 찾아간 곳이 신(神)아버지인 김창규 박

수님의 법당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가 신(神)

아버지인 김창규 선생님의 진적날이었다고 한다.

신아버지의 진적굿이 신굿이 되어 그자리에서 내

림을 받고 무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내림을 받고 나니 아

픈 몸이 씻은 듯이 나았고, 썩어 들어가던 양다리

도 완쾌되어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한애옥 선생님의 집안은 무가(巫歌)의 명가(名

家)였다고 한다.

한애옥 선생님의 외할머니는 김사금 선생님으

로 나라에 이름난 큰 만신이었고 이모할머니 또

한 새미네 엄마라는 이름으로 황해도에서 크게

이름을 날린 큰무당이었다고 한다. 집안이 무가

(巫歌)의 명가(名家)라 신줄이 너무 강해서인지 12

세에 신을 받고 일년 후인 13세 되던 봄날에 친어

머니마저 신을 받고 무녀가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모녀지간에 신싸움도 많이 했다고 한

다. 하루는 친어머니가 부엌칼을 어깨에 꽂고 죽

으라고 했을 정도로 신싸움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했듯이 끈끈한

모녀의 정으로 두분은 화해를 하고 사이좋게 지

내게 되었고 사람들에게‘모녀보살’로 이름이

났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어느덧 신을

모신지가 61년이 되었다며 그동안의 세월을 돌

아보시며 감격과 회한의 눈물을 흘리시는 선생

님의 모습을 보니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

랄까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한애옥 선생님은 무당으로 61년의 세월을 보내

면서 무당으로써 신령님의 제자로써 많은 업적과

명성을 남기셨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양주소놀이굿 전

수 조교로 국가의 전통문화 계승발전에도 이바지

하였고 한국방송공사 KBS에 무속기록 영상촬영

에도 기여하였고 각 대학과 기관에도 한국전통굿

에 대한 영상 등 자료를 제공하여 한국굿의 기틀

확립에 이바지 하였으며 전국의 수많은 행사에

참여하여 우리 굿의 전통성과 우수성 홍보에 큰

공을 세우셨다.

뿐만아니라,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기초수

급자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61년동안 한결같이

쌀과 현물 등을 제공하고 소외된 불우한 이웃분

들께 희망과 용기를 주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공로를 국가로 부터 인정받아

국세청으로 부터 세금 등을 면제받는다고 한다.

한국민속신문사 대표인 필자가 한애옥 선생님

을 더욱 더 존경하게 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애

옥 선생님의 살신성인(殺身成人)의 선행(善行)때

문일 것이다.

한애옥 선생님은 61년동안 신령님을 모시면서

신령님이 주신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감사하며 사

셨다고 한다.

꽃을 사랑해서 뜰에는 온갖 종류의 꽃을 심었고

동물을 사랑해서 거의 모든 동물을 다 키워봤다

고 한다. 꽃과 짐승 등 미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럴진 데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

은 어땠을까?

한애옥 선생님은 지금까지 20명의 어린아이를

키웠다고 한다. 부모로 부터, 사회로 부터 버림받

은 오갈데 없는 불쌍한 어린아이들을 데려다 친

아들처럼 키웠다고 한다.

학교를 보내 교육을 시키고 시집 장가를 보낸

수가 자그마치 20명이라 한다. 공양주 할머니가

“차라리 고아원을 해라”“고아원을 해”하며 나무

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무속인생 61년간 신령님을 위해 불쌍한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사시며 우리 무교인의 사회적 지

위와 권익향상에 이바지하신 한애옥 선생님은 한

국민속신문사 대표인 필자가 명절때마다 찾아가

세배를 드리는 유일한 무교인이다.

무교와 사회를 위해 고생하신 한애옥 선생님의

노고를 진심으로 감사드리며“이달의 유명인사를

찾아서”의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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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안녕하세요? 한애옥 선생님!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민속신문 구독자를 대신해서 인사올립니다.


한애옥 선생님:네~ 부족한 저를“이달의 유명

인사를 찾아서”에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단법인 대한경신연합회 이성재 이사장님과

한국민속신문 구독자 여러분들께 서면으로나마

인사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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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네~ 한애옥 선생님! 신의 길을 가시면서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계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

까?


한애옥 선생님:네~ 신의 길을 가면서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신아버지인 김창규 박수님입니다.

신아버지인 김창규 박수님은 17세에 신을 받은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충청도 분이었고, 김 선생님

은 인천에서 태어나서 내림을 하였다고 합니다.

한양굿으로 유명했고 유계미 만신, 병호엄마,

은하엄마, 찐빵만신, 청빼미만신 등 당대의 기라

성같은 만신의 대열에 들었던 이름난 박수였습니

다. 그분의 도움으로 올바르게 신의 길을 갈 수 있

었습니다.

제가 그분의 진적날 내림굿을 하면서 첫 말문

으로“벼락대신할머니가 천지신령님을 모시고 왔

다”라고 말하자 정말 잘했다라며 격려해 주시며

벼락대신할머니만 계시고, 벼락대신할머니가 최

고인줄 알았던 저에게 친딸을 측은히 여기는 친

아버지처럼“얘야! 신은 벼락대신만 계시는 것이

아니고 천신·만신이 계시단다”라고 말씀하시며

앞으로 기도에 정진해서 열두신령님의 명패를 받

아 더욱 더 열심히 기도발원을 해야한다며 저에

게 용기와 가르침을 주신 첫번째 선생님이신 신

아버지인 김창규 박수님이 가장 많이 생각이 나

며 두번째로 생각이 많이 나는 어른은 지금으로

부터 44년전에 만난 두번째 신선생님이신 이정희

박수님이시다.

열세살 박수이신 이정희 선생님은 덕물산에서

제수굿인 경사굿을 하다 양반집 자제에게 신이

내려 신을 받은 케이스이다.

경기도 굿인 장단굿을 하셨으며 키가 크고 잘

생기셨고 목소리가 옥그릇에 옥구슬 굴러가듯 아

름다웠다고 한다.

두번째 선생님이신 이정희 박수님은 신침도 잘

놓았고 잘불렸다고 한다.

임진강 일대가 다 단골일 정도로 신도가 많았

다고 한다. 마음씨도 어질고 인자해서 주변의 어

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왔다고 한다.

부인이 돌아 가실때도 부인을 어깨에 안고 부

인의 얼굴을 보며 임종을 끝까지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상문으로 인해서 한쪽 안면과

하반신 마비가 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토록 어질고 성품이 고운 이정희 선생님의

도움으로 경기도 굿인 장단굿의 대가가 될 수 있

었던 것 같다. 지금도 이정희 선생님께 감사드리

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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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네~ 말씀 잘들었습니다. 12살에 내림을

받아 61년간 신의 길을 걸어오면서 힘들었거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한애옥 선생님:네~ 옛날에는 정말 가난했고,

정말 추웠고, 정말 배가 고픈 시절이었습니다. 옛

날에는 지금처럼 굿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굿

은 제가 집에 가서 했습니다.

굿을 할때는 지금처럼 전기불이 없어서 호롱불

이나 난포를 기둥에 걸고 굿을 했으며, 일을 가면

제일 먼저하는 일이 짚·수세미·잿물비누로 선

생님들의 고무신을 닦는 일이었습니다.

제가집에 가서 굿을 하면 봄에는 먹을 것이 없

어 보리고추장, 밀고추장을 비벼 먹던 일이 생각

이 납니다. 정말 춥고 배고픈 보리고개 시절이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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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네~ 말씀 잘들었습니다. 한애옥 선생님

61년전 처음 본 점이나 첫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

시겠습니까?


한애옥 선생님:네~ 61년 전 첫 점은 어느 60

대 할머니가 점을 보러 왔기에 집에 아픈 할아버

지가 누구냐고 물으니 깜짝 놀라며 남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 일이 되어 제가 집에 가니 웬 노인이 앓

아 누워 입만 벌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 한다.

그 당시 신아버지가 첫 일은 기억에 남아야 한

다며 징 등 간단한 용품만 보자기에 싸서 열두살

의 어린저를 혼자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 긴장하고 당황했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신령님의 강한 기운이 느껴

져 용기를 내어 일어나서 푸닥거리 의식을 하니

아픈 할아버지가 병이 나아서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 일로 저는 이름이 나고 유명하게 되었습니

다. 그 일에 대한 댓가로 돈 30환과 수수 한말, 보

리쌀 한말, 쌀 한말을 받았습니다.

6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첫일이라 그런지 생생

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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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네~ 말씀 잘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양주소놀이굿 전수조교

로 모든 행사를 사무국장님과 함께 주관하고 계

신데‘양주소놀이굿’에 대해 간략한 설명부탁드

립니다.


한애옥 선생님:네~ 양주소놀이굿은 우마숭배

와 농경의례안 소멕이 놀이에 기원을 두고 무속의

제석거리와 마마숭배굿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연

희로 일찌기 농경국가로 발달한 우리 문화에서 없

어서는 안될 소를 등장시켜 노는 놀이굿이며 제석

거리와 더불어 동네와 가정의 악귀를 쫓고 농사나

사업 또는 자손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굿으로서

단순한 농경의식이나 무속에서 벗어나 일종의 오

락적 성격을 갖춘 연희이며 그 가사는 장편 서사시

로 연희뿐만 아니라 문학적 측면에 있어서도 대단

히세련되어 있습니다.

한국무속의 기능을 사제, 점복예언, 무의, 오락

예능의 넷으로 구분한다면‘소놀이굿’은 그 중 오

락예능적 기능에 속하며 의례에서 연희로 발전하

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주소놀이굿은 소를 끌고 온 마부가 무당과

해학적인 재담을 하고 소의 각 부분의 치레를 소

리로 하고 축원, 덕담하는 것으로 연희적인 특성

이 강한 굿입니다.

양주소놀이굿은 경사굿으로 부정청배, 불사맞

이, 번양놀이, 가망놀이, 조상거리, 상산거리, 제석

거리, 소놀이굿, 성주거리, 창부거리, 건립거리, 터

전거리, 지신거리, 뒷전거리로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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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네~ 말씀 잘들었습니다. 끝으로 우리 무

교의 발전을 위해 덕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한애옥 선생님:네~ 무당은 단골을 위해 신령

님께 지극 정성으로 빌어야 합니다. 단골은 성불

을 봐야 오는 것입니다.

단골의 성불은 제자의 피나는 기도발원과 정성

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무당은 서로 베풀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

니다. 무당이라는‘업’이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듭

니까? 그런데 서로 헐뜯고 싸워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제부터라도 서로 싸우고 헐뜯는 모

든 악습과 구태는 버리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베

풀며 단결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와 국

가로 부터 대우받고 무교의 장미빛 청사진이 열

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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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 주신 한애옥 선

생님께 감사드리며, 사단법인 대한경신연합회 이

성재 이사장님과 함께 힌애옥 선생님의 건승과

발전을 기원하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한애옥 선생님 :네~ 부족한 저를“이달의 명

사”로 초대해 주신 한국민속신문사 대표님께 감

사드리고 끝까지 글을 읽어주신 한국민속신문 구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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