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 선소리 산타령 동대문지부 박서희 우리소리예술원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 선소리 산타령 동대문지부 박서희 우리소리예술원

관리자 0 690 2021.03.17 14:45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선소리 산타령 동대문지부

박서희 우리소리예술원

010-3942-7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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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굿 열두거리, 진오귀굿, 앉은거리,

조상경, 회심곡, 장구, 제금, 징치는 법

신장, 대감, 창부타령(목트임창법)    

국악이수자(경기민요) 속성지도합니다.

단체반/ 개인반 운영합니다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57-1번지       

주공프라자2층 204호                  

TEL : 02)954-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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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주공프라자2층 204호에 자리

잡은 사단법인 중요무형문화쟤 제9호 선소리

산타령 동대문지부 박서희“우리소리 예술원”

에 들어서는 순간 깨끗하게 잘 정돈된 연습 공

간과 35년 무교 인생과 국악 인생이 담긴 주옥

같은사진들이눈앞에펼쳐진다.                

잘 정돈된 고가구와 장구. 신복 등이 명문학원

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해주고 중앙에 위치한

이곳의 당주이며 원장이신 박서희 만신의 신당

이 신비스럽고 엄숙하게 자리 잡고 이곳을 더욱

신성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같다.                

"이 달의 명사를 찾아서"의 주인공인 박서희 우

리소리 예술원 원장님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

를 해드리고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1965년 을사년에 전라도의 주산(主山)인 지리

산과 무등산의 정기를 받고 전라도 화순에서 밀

양박씨 가문에서 태어난 무교인 박서희 만신은

7~8세 때부터 신병인 무병을 앓기 시작했고 귀

신을 보기 시작해서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

서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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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무병으로 외할머니께서 27세에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마저도 끝까지 신을 모

실 것을 미루다 29세에 신병으로 돌아가시고 여

흥 민씨인 어머니께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오셨던 신령님들이 두 분이 돌아가시자 어머니

께로 오셔서 어머니께서는 한평생을 신가물로

고생하셨고 산대신으로 4남매 자식들의 명복과

성공을 빌며 한평생을 바치셨다고 한다. 어머니

얘기를 하시면서 박서희 원장님의 고운 얼굴에

는 어느덧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모습을 보니 내 눈시울도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

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박서희 만신이 18세가

되던 어느 날 꿈속에서 신령님이 나타나서 나를

모셔라 하며 꾸지람 겸 호통을 치시기에 두렵고

신비스러운 기운에 눌려 신을 모시겠다고 맹세

를 하고 잠을 깼다. 그 후로 꿈은 계속해서 몇날

며칠을 이어졌고 어머니인 외가부리 여흥 민씨

의 조상이며 이씨 왕조의 국모이신 명성황후께

서 꿈에 나타나서 훗날 나를 모셔라 말씀하시며

“명성당”이라는 신당명을 일러주시며 사라지셨

다고 한다. 그로부터 박서희 만신은 신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어느덧 35년이 흘렀다고 한다.

박서희 원장은 18세에 신을 받고 주경야독을 하

듯 낮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고 밤에는 신

당에서 신령님을 모시면서 굿과 경문같은 신령

님 문서를 공부했다고 한다. 무녀도 배워야 한다

는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한중대학교 전통과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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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산타령 문화재 보유자이신 최창남   

선생님께 소리를 전수 받았고 지금은 작고하신

이우호 선생님께 고전무용을 전수받았다고 한

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많은 선생님들께 국악

의 소리와 우리의 전통춤을 배웠고 피나는 노

력과 타고난 재능 덕분에 40대에 접어들면서

세상에 이름을 내기 시작했고 KBS국악한마당,

생생정보통, 불교방송, 스포츠서울, 폴리피플

등 수많은 방송과 매스미디어에 출연하게 되었

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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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왕성한 국악 활동을 하던 중 어느 날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서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

이 없어 답답해하는 만신들이 많으니 앞으로는

국악 활동과 함께 배우고 싶어 하는 신의 제자

들을 위해서 올바른 굿거리와 신령님 문서들을

전수해 주라는 계시를 받고 무속학원을 국악과

함께 같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항시 제자는 돈

보다는 신의 제자라는 명예를 중시 여기고 신령

님 섬김에 빈틈이 없어야 하고 일반인에게 존경

받는 행동과 인성을 갖추어야 무속이 발전한다

고 말씀하시며 오늘도 참돤 인성을 갖춘 올바른

무속인을 양성하시며 무속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박서희원장님을 보면 왠지 고개가 숙여진다. 이  

로써 간략하게 박서희 만신의 소개를 끝마치고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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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안녕하세요? 박서희 원장님 만나 뵙게

되어반갑습니다.               

박서희 원장: 네, 반갑습니다.               

필자 : 박서희 원장님! 선소리가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박서희 원장 : 네, 선소리는 서울지역과 서도지

방의 잡가중 서서 부른다하여 붙여진 이름으

로 입창(立唱)이라고도 합니다. 선소리는 크게 3

가지로나눠집니다. 산타령, 양산도, 매화타령등

으로 구성된 경기 선소리와 보렴, 긴육자배기,

개구리타령 등으로 구성된 남도 선소리와“산타

령”등 서도 선소리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선소

리를 노래하는 집단을 선소리패라고 하고 그 지

도자를 모갑(某甲)이라고 부르며 모갑밑에 남자

8~9명과 여자 1~2명이 한패를 이루면 이를 우

리는 사당​패라 불렀습니다.                    

필자 : 박서희 원장님 선소리에 대한 설명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산타령에 대해서도 간략하

게 설명해 주세요.                             

박서희 원장 : 네, 산타령은 선소리의 한 곡으

로 아름다운 산천의 경치를 노래하고 있으며 메

기고 받는 형식으로 불려지고 산타령은 안성 청

룡사가 본거지로 추정되며 앞산타령 뒷산타령

의 가사에서 보듯이 산을 중심으로 한 내용에서

따온 사당패의 소리였습니다. 그후 산타령은 서

울지방과 평양(서도)지방에서 발달하게 됩니다.

필자:박서희원장님, 선소리와 산타령에 대한   

설명 잘 들었습니다. 박원장님! 굿과 신령님 문

서를 배우고 싶은데 망설이는 제자 분들에게 덕

담을부탁드립니다.                             

박서희원장: 네, 많은 제자분들이 신령님모신  

경력이 오래되었는데 굿문서를 모르면 다른 만

신들이 흉본다고 생각하거나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여 배우기를 망설이고 고민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망설이지 마세요. 배움은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모르면 배워서 굿을 할줄 알아야 만신

령님께 떳떳하고 굿을 딴 제가집에 당주로서    

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은 신령님이

주시지만 재주는 인간이 배워야 합니다. 신의 길

은 끝없는 길입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빠른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힘차게 도전하십시오.   

필자 : 박서희 원장님, 지금도 왕성한 국악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1년에 대략 어느 정도 활동을

하시고 활동장소는 주로 어디입니까?      

박서희 원장 : 네, 국악 활동은 1년에 60~70회    

정도 행사를 합니다. 행사장소로는 예술의 전당,

경복궁, 운현궁의 소극장과 외국인들에게 우리

의 것을 알리는 인사동 야외무대인 남인사마당

등 많은 장소에서 이루어 집니다.             

필자 : 박서의 원장님이 생각하시는 국악과 무

속에 대해서 한말씀 부탁 드립니다.

박서희 원장 : 네, 국악을 한 나라의 전통음악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국악의 모태는 굿거리에

서 파생된 것입니다. 굿거리장단과 굿거리에 나

오는 희로애락과 한 많고 원 맺힌 소리가 우리

국악으로 스며들었고 우리의 마음 우리의 혼이

된 것입니다. 우리 굿문화가 한국문화의 중심이

자 뼈대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집니다.      

필자 : 박서희 원장님, 만신으로서 35년간 신    

의 길을 걸으시면서 보람이 있었던 일과 아쉬웠

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씀해 주세요.

박서희 원장 : 네, 35년간 만신으로서 신의 길  

을 걸으면서 보람이라면 현대 의술로 포기했던

환자들이 신령님의 원력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볼 때 보람이 있었고 모

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일들이 신령님

의 도법으로 가능해 지고 법당의 신도님네 가정

과 사업체가 신령님의 은혜와 보살핌으로 편안

하고 태평하게 잘되었을 때 행복했으며 안타깝

고 아쉬웠던 일들이라면 TV에서 돈에 대한 욕

심이 지나쳐서 신령님을 욕되게 하는 방송이 나

올 때 안타깝고 부끄러웠고 신령님을 모시는 제

자끼리 서로 존중하고 감싸 안으며 신의 길을

가도 힘이든 길이 신의길인데 내신령님, 내문서

만 최고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신령님과 문

서는 인정하지 않고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제자

들과 앞에서 웃으며 친한 척하고 뒤에서는 헐뜯

고 이간질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필자:박서희원장님, 마지막으로 사단법인 대   

한 경신연합회 이성재 이사장님의 무속의 종교

법인화를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박서희 원장 : 네, 이성재 이사장님이 추진하고

계신 무속의 종교법인화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

고 생각됩니다. 우리 무속이 관습적인 전통종교

가 아니라 국가와 법전에서 인정받고 보장받은

종교법인이 되어야 우리 30만 무속인 형제들이

더 이상 특정 무속인이 아닌 정식적인 종교 지도

자가 되어 신앙생활 할수 있다고 봅니다. 이는  

우리 무속인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문제라고 보

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루 빨리 우리 모두 단합

하여 무속의 종교법인화를 이룩합시다. 그리고

무속의 종교법인화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하고 계

신 이성재 대한경신엽합회 이사장님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필자 : 박서희 원장님! 오늘 좋으신 말씀 감사

드리고 이성재 이사장임과 함께 박서희 원장님

의 건승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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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한국민속 신문 대표 정 원모

010-9056-3977(칠성불교만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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